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사군 한반도설 식민사관 주장 사건 (문단 편집) === 이 연구가 본격으로 이루어진 진짜 시기 === '''사실은 조선시대부터 나오던 학설이다.''' [[일본 제국]]은 조선 학자들의 성과를 가로채었을 뿐. 아래 표에 나오듯 조선시대 중기부터 낙랑군과 관련된 지명을 추론하였다. ||<#f5f5f5> ||<#f5f5f5> 한백겸[br]^^1552 ∼ 1615^^ ||<#f5f5f5> 홍여하[br]^^1620 ∼ 1674^^ ||<#f5f5f5> 한진서[br]^^1777 ∼ ?^^ ||<#f5f5f5> [[정약용]][br]^^1762 ∼ 1836^^ ||<#f5f5f5> [[증보문헌비고]][br]^^1908^^ ||<#f5f5f5> [[이병도]][br]^^1896 ∼ 1989^^ || ||<#f5f5f5> 패수[* 여기서의 패수는 고조선의 경계라고 알려진 패수와는 다르다. 패수는 시대에 따라 위치가 변화했는데 고조선에 흘렀던 패수와 낙랑군에 흘렀던 패수는 다른 강이라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다. 물론 두 패수가 같은 강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존재한다.] || [[청천강]] || [[청천강]] || [[대동강]] || [[대동강]] || || [[청천강]] 북지류 || ||<#f5f5f5> 열수 || [[한강]] || [[한강]] || [[한강]] || [[한강]] || [[한강]] || [[대동강]] || ||<#f5f5f5> 대수 || [[대동강]] || || [[임진강]] || [[임진강]] || [[임진강]] || [[재령강]] || ||<#f5f5f5> '''[[낙랑군]][br](조선현)''' || '''[[평양]]''' || '''[[평양]]''' || '''[[평양]]''' || '''[[평양]]''' || '''[[평양]]''' || '''[[평양]]''' || ▲ 오영찬(2012)[* 오영찬, 2012, 「조선 후기 고대사 연구와 漢四郡」, 『역사와 담론』제64집, 대전;호서사학회 30쪽에서 일부 편집, [[http://cafe.naver.com/booheong/111610]]에서 재 인용]에서 인용 >약용이 살펴보건대, 당시의 다섯 군은 모두 평주에 딸렸고, 평주는 요동 양평을 치소로 삼았으니, 어찌 다섯군의 지역이 모두 [[요령성|요동]]의 경계 안에 있었겠는가. 이런 이치는 없는 것이다. [[압록강]] 서쪽에서는 [[낙랑]]과 [[대방]]의 자취를 찾을 수 없다. >------ >[[정약용]], [[아방강역고]][[http://www.ikaa.or.kr/webzine/read.php?pid=8&id=46|#]] 이 학설은 조선 전기에 편찬된 세종실록에도 적혀있다.[* 다만 아래 내용의 후조선(後朝鮮), 즉 [[기자조선]]은 현대 사학계에서는 실존하지 않다고 보고있다. 정확한 내용은 [[기자조선]] 항목 참조] >본래 [[삼조선]](三朝鮮)의 구도(舊都)이다. 당요(唐堯) 무진년에 신인(神人)이 박달나무 아래에 내려오니, 나라 사람들이 〈그를〉 세워 임금을 삼아 평양에 도읍하고, 이름을 단군(檀君)이라 하였으니, 이것이 전조선(前朝鮮)이요, 주(周)나라 무왕(武王)이 상(商)나라를 이기고 기자(箕子)를 이 땅에 봉하였으니, 이것이 후조선(後朝鮮)이며, 그의 41대 손(孫) 준(準) 때에 이르러, 연(燕)나라 사람 위만(衛滿)이 망명(亡命)하여 무리 천여 명을 모아 가지고 와서 준(準)의 땅을 빼앗아 왕검성(王儉城)【곧 평양부(平壤府)이다.】에 도읍하니, 이것이 위만 조선(衛滿朝鮮)이었다. 그 손자 우거(右渠)가 〈한나라의〉 조명(詔命)을 잘 받들지 아니하매, [[한무제|한나라 무제(武帝)]] [[기원전 109년|원봉(元封) 2년]]에 장수를 보내어 이를 쳐서, [[진번군|진번(眞蕃)]]·[[임둔군|임둔(臨屯)]]·[[낙랑군|낙랑(樂浪)]]·[[현도군|현도(玄菟)]]의 4군(郡)으로 정하여 유주(幽州)에 예속시켰다. 반고(班固)의 《전한서(前漢書)》에 이르기를, “현토와 낙랑은 본래 기자(箕子)를 봉한 곳인데, 소제(昭帝) 시원(始元) 원년에 임둔·낙랑으로써 동부 도호(東府都護)를 설치하였다.” 하였고, 《당서(唐書)》에 이르기를, “변한(卞韓)은 낙랑 땅에 있다.” 하였다. >---- >[[세종실록지리지|세종실록 지리지]] [[평안도]] 평양부(平壤府) >본래 예(濊)의 고국(古國)인데,【철국(鐵國)이라고도 하고, 예국(橤國)이라고도 한다. 】한나라 무제(武帝) 원봉(元封) 2년에 장수를 보내어 우거(右渠)를 치고 사군(四郡)을 정할 때에, 임둔(臨芚)이라 하였다. >------ >[[세종실록지리지|세종실록 지리지]] [[강원도]] 강릉 대도호부(江陵 大都護府)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